2013/11/30 02:03

한페이지 단편_ 겨울 단편소설


난 미처 몰랐다. 나도 상처받을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.

그것을 일깨워준 너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이 나는 그리 달갑지 않다.

 

나 안 보고 싶었어?

 

나는 그냥 말없이 너를 쳐다본다.

 

나한테 화가 난거지? 내가 미운 게 아니라.

 

너는 조금 울 것 같은 표정이 된다. 나는 그런 너를, 벽과 마주한 듯 한 빈 마음으로 바라본다.

 

나 미워하지 마.

 

우리는 서로 움직이지 않은 채 서 있다. 한 발짝도 꿈쩍 않고 그냥 그대로 서 있다. 호텔 켈리포니아 라는 음악이 생각난다. 나는 말했다.

 

잠에서 깨어서는 네가 좋은 꿈을 꾸었어. 나 울고 싶어.’ 라고 말했을 때, 난 그냥 그래도 좋다고 했어. 네가 어느 날 슬픈 표정 으로 내게 안아줄 것을 청했을 때도 나는 그냥 너를 안아줬어.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아무것도 묻 고 싶지 않았던 거야. 내키지 않았어.

 

 

나는 변함없이 너를 응시하며 말했다. 내 목소리는 조금 지쳐 있는 듯 했다.

 

네가 말없이 떠나버린 그 날 아침. 눈이 무진장 내렸어.

 

나는 그날 아침을 떠올린다. 텅 빈 방. 방안을 채운 푸르스름한 한기. 어지럽게 흩날리던 하얀 눈. 너는 속으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왜 그렇게 사라졌는지 물어야 하는 걸까. 이렇게 나타나버린 너에게.

너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.

 

그래야만 한다고 느낄 때가 있어. 그건 아무 이유도 없고 아무 계기도 없어

그냥 어느 순간 그래. 나는 그 때 그 아침, 그래야만 했어.

 

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겨울 아침 상처받고 말았다. 가끔 생각한다. 그 날 눈이 오지 않았다면 상처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. 네가 바보 같은 낙서를 내 몸에 잔뜩 해 놓지 않았다면, 그렇게 적막한 아침이 아닌 시끌벅적 소란스런 아침이었다면. 나는 상처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.

나는 옷깃을 여미고는 너에게서 돌아서며 말했다.

 

역시 이럴까봐 너에게 질문을 한다는 건 별로 내키지가 않았던 거야. 반가웠어.

 

나는 완전히 돌아섰다. 지금 너는 내 뒷모습을 보고 있을까, 아니면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려 내게서 멀어지고 있을까.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너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것 같다. 짧게 사각거리는 발소리. 나를 올려다보던 너의 얼굴이 자꾸 눈앞에 맴돈다. 그에 반해 나의 걸음은 거침없이 앞을 향해 나아간다. 나는 멀어지고 있다.

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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